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 가족회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납북자의 존재를 확인할 만한 기초적 명부조차 없는 황무지를 딛는 심정이었습니다. 다행히 지난 수년간 한국전쟁 납북사건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해 노력해 오는 가운데 우리 가족회 회원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도움에 힘입어 상당한 성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전쟁에 관한 수많은 연구서와 저서가 있었지만 납치문제를 비롯한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인권피해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연구와 조명이 없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의 하나는 우리들의 사고가 이념적 양극화의 대립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1950년부터 3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한국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고, 우리 마음에 뿌리 깊은 불신과 미움, 원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제 증오와 반목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순수하게 이 문제를 직시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좌우 이념을 떠나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야 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전쟁기 민간인 납치사건을 바르게 조명하여 역사에 기록을 남김으로써 납치되어 희생된 모든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습니다. 북한에 있는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에게도 영원히 잊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저희 자료원이 한국전쟁기 납북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지금 북한에 살아계시거나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행적과 생사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연구물들을 풍성히 생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많은 연구자들이 모여들어 활발히 토론하고 연구하게 되는 날을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납북 희생자들을 대한민국 역사의 제자리로 모셔오는 날이 속히 와서 그 분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인사의 말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