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6·25납북 분석]수도권 42%, 20,30대 69% ‘콕 찍어 납치
  이름 : 관리자 날짜 : 2006-10-11 10:53:58 조회 : 4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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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납북 분석]수도권 42%… 20,30대 69% ‘콕 찍어 납치’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킨 뒤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북한군은 여세를 몰아 계속 남하했지만
일부는 서울에 남아 전문지식이나 행정 경험을 갖춘 ‘인텔리’ 납치에 열을 올렸다.

북한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지금까지 학계에선 김일성이 북한 사회 재건을 위해 조직적으로
남한의 지식인과 기술자들을 납치했다는 주장이 일부 제기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 산하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과 김명호 강릉대 경영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한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는 이런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전쟁 납북자 9만6013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전쟁 발발 후 3개월간
서울의 인텔리 계층을 집중적으로 납치했음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사전 기획된 납치”=1950년 7월 8일 오후 2시경 서울 용산구 남영동 김점석(당시 30세·변호사) 씨의
집에 붉은 완장을 찬 북한 공산당 용산정치보위부 요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요원들은 다짜고짜 “김 변호사님,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라고 말한 뒤
김 씨를 강제로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가 버렸다.

부인 박옥련(87) 씨는 이후 56년간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위궤양으로 거동이 불편하던 자신 때문에
피란을 가지 못한 남편이었기에 안타까움은 더했다.

박 씨는 “완장 찬 사람들은 남편이 전직 부장검사이자 변호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당시 법조계, 정치계 주요 인사를 모두 납치하라는 북한의 비밀지령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박 씨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준 것.

북한은 6·25전쟁 발발 뒤 석 달(7∼9월)간 전체 납북자의 88.2%인 8만4659명을 집중적으로 납치했다.


그해 8월에는 전체 납북자의 절반에 가까운 4만280명(42%)이 납치됐다.
1950년 9월 이후 납북자(납북 시기 미기재 포함)가 9451명으로 9.8%에 불과한 점으로 미뤄 전쟁 직후 미리 준비한
각본대로 일사불란하게 납북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20, 30대 전문직 종사자와 기술자가 집중 납치됐다.

전체 납북자 가운데 서울에서 납치된 인사는 4명 중 1명꼴인 2만2348명(23.3%)에 이른다.
1949년 인구(통계청 자료)와 비교할 때 서울의 납북자는 전체 인구의 1.5%로 전라도(0.2%)와 경상도(0.15%)를
크게 앞선다.

김 교수는 “전쟁 초기 한강 다리가 끊어진 이유도 있지만 정치 사회 문화 중심지인 서울 한강 이북 지역에
인텔리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납치 기준은 활용 가능성”=그렇다면 북한은 납북 인사들을 어떤 기준으로, 왜 납치했을까.

가족협의회의 이미일 이사장은 ‘북한 사회에서의 활용 가능성’이 납북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강조한다.

당시 북한은 개인 재산을 전부 몰수한 데다 지주계급과 종교계 인사를 비롯해 전문직 인텔리 계층의 상당수를
숙청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 거주하던 지식인 상당수가 남한으로 피신했고 북한 사회에는 인텔리 계층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것.


이 이사장은 “북한 입장에선 대학을 세우고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교수를 할 사람도 법을 전공한 사람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며 “전쟁 뒤 북한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남한의 인텔리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말했다.


실제 납북된 기술자 2836명 가운데 88.8%인 2518명이 전쟁 발발 직후 3개월간 집중 납치됐다.
법조인의 88.4%(168명), 의료인의 88.3%(505명), 공무원의 76.3%(2226명), 교수·교사의 75.6%(652명)가 같은
기간에 납북됐다.

전체 납북된 인사 가운데 20, 30대가 69%에 이르는 점도 북한이 사회 재건에 활용하려 했다는 점을 뒷받침해 준다.

또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5만8373명을 납치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일반 농민이 아닌 마을 이장이나
농촌지도자였던 것으로 확인돼 북한이 집단 영농체제 구축에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한편 전쟁 납북자 중 여성의 비율은 1.9%에 그쳤다. 이 이사장은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북한이 기술력과 노동력을 갖춘 인텔리 납치에 중점을 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어떻게 조사했나

지금까지 확인된 납북자 명부에 있는 11만2687명 중 중복 명단을 뺀 9만6013명을 대상으로 납치 지역과
시기, 나이, 직업 등의 관계를 정밀 분석했다.

공보처 통계국이 1950년 작성한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와 정부가 1952년 작성한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
내무부 치안국이 1954년 작성한 ‘피랍치자 명부’ 등 5개의 명단을 대조해서 명단을 추려냈다.
통일부 관계자는 자료 출처인 정부 문서의 신뢰성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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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보도된 내용은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1>에 실린 강릉대 김명호 교수의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씌여진
2006년 8월 14일자 동아일보의 1면 3면 특종기사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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