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1 발간사 '미래를 위한 기획'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0-28 17:57:21 조회 :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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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來를 위한 기획


1000쪽이 넘는 이 사료집을 기획하고 발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각되는 것은, 과연 누가 이 책의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 책은 읽기에 편안하고 재미있지도 정보가 풍부하거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지혜가 담겨있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미래’를 위해서 기획되었다고 발간의 변을 시작하고 싶다.
이 책은 뒷날 학자들이든 정치가이든 젊은 학생들이든 우리의 역사를 바로 이해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기획되었다. 뒷날 누군가가 이 책을 접하면,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을 연약하고 작은 이들의 존재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천 근 만 근보다 무겁고 평생을 찾고 기다리고 사랑할 만큼 가치 있다는 것을 문득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한 이 책이 기획된 까닭이다. 바로 이 대목에 ‘역사적 기록’의 준엄함과 경건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납북자 가족들에게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고 포성이 멎은 지 53년이 되었지만 전쟁 중에 북한이 납치해 간 10만을 헤아리는 남한 민간인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 이 책의 화보에서 보여주는 희미한 흑백의 영상들, 특히 포승에 묶여 어디론가 끌려가는 납북자들의 뒷모습만이 이 심각한 인적 피해 문제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것은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 아닌 듯하다. 남북한의 화해 무드가 조성될 때마다 우리 납북자 가족들에게 찾아왔던 그 실낱같은 희망보다 우리에게 심각하게 엄습해 오는 것은 불안감이었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 깔린 순수한 피해자에 불과했던 납북자들은 그야말로 이름도 흔적도 없이 희생자로서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고 말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망각이야말로 납북자들에게 가하는 또 하나의 형벌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남쪽에 남은 우리 가족들이 팔을 걷어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활동과 함께 역사적 자료 발굴에 애썼던 것은 이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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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납북자 문제는 아직 현대사를 연구하는 사가(史家)들의 관심권에 들어있는 것 같지 않다. 하물며 정치권이나 언론은 곧잘 전후 민간인 납북사건만을 이른바 납북자문제로 인식하는 경향마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1953년 이후에나 시작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벌어져 있는 현실은 우리 전쟁 납북자 가족들을 망연자실케 했다.
이런 상황에서 40여 년 전에 중단된 가족회 활동을 다시 시작했을 때 우리 가족들의 심정은 황무지를 딛는 것과 같았다. 납북자의 존재를 확인해 줄 만한 명부나 문서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회 활동은 가장 먼저 시간과 무관심에 저항하는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가족들이 너무나 자명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6.25전쟁 납북자들의 존재 확인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사료집은 우리 가족들이 존재의 흔적을 속절없이 지워가는 무형의 시간과의 싸움이면서, 정부, 학계, 시민들의 철저한 무관심에 실증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서 벌인 우리의 외로운 싸움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발간의 변을 쓰면서 지난 6년간의 우리의 가족회 활동과, 작년에 비로소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개원한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의 역사 기록 작업을 반추해 보자니 감개가 무량하다. 명부 하나 하나, 문서 하나하나가 발견되는 순간이 마치 기적과 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발간사가 길어지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기록하고자 한다.
2000년 우리 가족들의 첫 작업은 납북자들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자료, 곧 공식 명부를 찾는 것이었다. 우선 우리는 대한적십자사가 1956년 전쟁납북자 가족들의 신고를 받아 작성한 명부인 <실향사민등록자명부> 사본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입수했다. 이 명부에는 총 7,034명의 납북자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북한이 이 명단을 받아 1957년에 회신해 준 337명의 생존자 회답서도 함께 받았다. 이 회답서는 지금까지 전쟁납북자 관련 남북 협상에서 남은 유일한 성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우리 가족들은 정부 기관 어딘가에는 좀 더 자세한 명부가 보관되어 있으리라고 믿었다. 정부 관계 기관들에 서신을 발송하여 명부 관련 자료 보관 여부를 질의하였지만 한결같이 부정적인 답변이었다. 직접 발품을 팔아 도서관, 고서점 등을 다니며 1년여를 찾아 헤맨 끝에 어느 고서 장서가로부터 납북자 명단이 적힌 명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한 결과, 1950년 12월 1일 공보처 통계국에서 최초로 작성한 <서울특별시피해자명부>로 총 4,616명의 피살, 납치, 행불자 명단과 인적사항이 분명하고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중 납북자가 2,43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명부를 기초로 우리 가족회의 의뢰를 받은 월간조선은 심층 취재에 돌입, 당시 김성동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대전 통계청에서 <6.25사변피랍치자명부>를 발견했다. 이 명부는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기(其)1권만으로 서울특별시 납북자 명단만 기록되어 있었다. 대신 명단은 없이 서울 명부에 전국의 납북자수 ‘총 80,661명’이라는 수치가 명시되어 있었다. 이 전국 단위의 명부를 찾는 숙제가 남은 셈이었다.
그러던 차에 2002년 2월 16일, 오세영 선생이 우리 가족회 사무실을 찾아 왔다. 그 분의 아버지가 납북되어 갔다며 증빙서류로 <6.25사변피랍치자명부 추가분> 표제와 아버님 함자가 있는 명부 면을 복사해 왔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다섯 권의 전국 명부가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여러 차례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검색했지만 그동안 사장되어 있어서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1952년 대한민국정부가 작성한 82,959명의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가 확보되었다. 이런 명부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많은 납북자 가족들이 연일 사무실로 달려왔다. 이 명부에서 납북된 가족의 이름 석자만 확인하고도 오열하던 이곳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전국 명부의 연고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정부에 이 명부를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예산 문제로 난색을 표했다. 이 때 강릉대학교 김명호 교수께서 이 명부를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제안해 오셨고 순수한 자원봉사로 석 달 만에 이 작업을 마쳐 주셨다. 김 교수님의 디지털 작업 덕분에 우리 가족회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직접 납북자 82,959명의 인적사항을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 표할 길 없는 감사를 김교수님과 강릉대학교 학생들에게 드리고 싶다.
또 하나의 가장 의미 있는 자료는 1956년 대한적십자사에서 전쟁납북자의 가족들로부터 받은 <실향사민안부탐지신고서> 원본 7,034부라고 사료된다. 이 신고서는 당시 납북자 가족들이 육필로 납치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록해 신고한 가장 오래된 1차 증언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가족회가 대한적십자사를 방문하여 이 신고서 원본 열람을 청하였을 때 이 생생한 육필 자료들은 상자에 원본 그대로 가득 꽂혀 있었다. 종이도 다양하고 낡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신고서가 태반이었다. 납북된 가족을 찾아 남쪽의 가족들이 꼼꼼하게 적은 육필의 이 자료들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자료의 가치를 인식시키고 시급히 보존해 줄 것을 요청했고 대한적십자사가 이를 받아들여 우리 가족회도 사본 한 질을 소장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대한적십자사와 당시 민병대 남북교류국장, 또한 이 자료를 가족회에서 소장해 줄 수 있도록 도와준 당시 김성호 국회의원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2002년 초부터 우리의 작업을 도와준 사유진씨는 이 사료집이 존재할 수 있게 한 데 가장 큰 공을 돌리기에 족한 분 중 한 분이다. 그는 전쟁납북자 관련 다큐멘터리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People of No Return>을 제작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료수집과 증언채록에만 거의 3년을 헌신하였다. 그 결과 국내에서 납북관련 유의미한 각종 문서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사감독은 자료수집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고 자료를 찾아내는 방법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믿어진다. 그의 장인 정신을 이 자리를 통해 깊이 치하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감독이 수집한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왜 ‘납북자'라는 단어가 휴전 협상 테이블에서 사라지고 ’실향사민‘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은 지금도 대북협상에서 ‘전쟁납북자‘라는 용어 대신 ‘전쟁 중 소식을 모르게 된 사람’이라는 용어를 쓰기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용어상의 양보가 결국 이 문제를 역사의 뒤편으로 사장시켜 버리는 결과를 낸 것에 대해 우리 가족들로서는 몹시 유감스러운 마음이다. 남도 북도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는 한 이 문제에 있어 진정한 진전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남북 양측 정부에 진실하고 성실한 태도로 전쟁 납북자 문제를 다루어줄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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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활동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어디까지 납북자로 규정할 것인가였다. 도무지 납북자수를 8만 여명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너무 광범위하지 않는가라는 의문도 종종 접했다. 실지로 1952년의 정부 명부에서 기록한 82,959명의 이름은 1954년 전후 내무부에서 다시 작성할 때 17,940명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우리는 이들 지워진 이름들이 대부분 미혼의 젊은 남자들, 곧 강제로 북한군에 끌려간 의용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는 이들 어린 영혼 역시 남에서도 북에서도 외면당한 진정한 전쟁 피해자이며 납북자의 범주에서 마땅히 다루어져야 할 사람들이라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강압에 의해 북한군에 봉사했다는 점이 대한민국으로부터 제명당해야 할 이유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있다. 전쟁론의 상식은 전쟁을 결정하는 정치가들과 그것을 수행하는 군인들의 입장, 그리고 전쟁의 피해를 받는 민간인들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인데, 왜 순수한 피해자인 민간인들만 언제까지나 이름도 빛도 없이 사라져 가야 하는 것인가?
1950년부터 3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한국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고 우리 마음에 뿌리 깊은 불신과 미움, 원망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증오와 반목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순수하게 이 문제를 직시할 때가 왔다고 본다. 좌우 이념을 떠나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야 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의 작업은 한국전쟁 기간 민간인 납치사건을 바르게 조명하여 역사에 엄밀하고 정확한 기록을 남기려는 취지에서 출발하지만 그 바탕은 북한에 피랍돼 희생된 모든 분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인간애에 기초해 있다. 우리의 이 작업은 그 자체로 이분들 삶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납북자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도 납북되어 간 후 생사도 모르는 사랑하는 내 아버지와 이 일을 함께 해 온 우리 가족회 회원들의 또 잊을 수 없는 피랍된 가족들에게 사랑의 인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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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간 여러 훌륭한 분들의 도움이 없이는 오늘 사료집 출간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분들 외에도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언론계 인사들과 종교계 인사들에 대한 세밀한 자료분석을 하여 저서로 출판한 노고에 감사드린다. 바쁘신 중에 선뜻 감수를 맡아준 경희대학교의 허동현 교수께도 감사드린다. 본인의 어머니 김복남여사의 재정적 뒷받침과 김영식 가족회 운영위원, 오세영 회원, 그리고 가족회 임원진과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별히 이 사료집이 나올 수 있도록 계획안서부터 편집까지 모든 과정에 길잡이가 되어 함께 헌신해 준 김미영 자료원 연구위원의 6.25전쟁납북 문제에 기울인 관심과 애정에 가족들을 대신하여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작년부터 가족들을 일일이 인터뷰해서 증언을 채록해온 김세연 연구원은 이 책의 편집에도 함께 해 섬세하게 한 장 한 장을 챙겨주었고, 증언 영상을 찍어 편집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준 나훈석 연구원, 사료집 편집의 여러 대목에서 손을 보태준 가족회 이석유 실장 등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까다로운 편집 작업을 불평없이 진행해 준 디자인실 앤드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지난 6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우리 가족회 회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는 생략하려 한다. 이 한정된 지면에 깊은 감사와 우정, 사랑의 마음을 다 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책과 자료원의 모든 활동이 한국전쟁기 납북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나아가 북한에 살아계시거나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행적과 생사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연구물들을 풍성히 생산할 수 있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납북 희생자들을 대한민국 역사의 제자리로 모셔오는 날이 속히 와서 그분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되기를 기원한다.


이미일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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